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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에 참전한 - 밴플리트, "독도는 일본 땅" 문건 작성

skybulls 2011. 8. 16. 18:09

 

[유코피아닷컴=박현일 기자, ukopia.com]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은 미국이 패전국 일본에 주권을 되돌려 준 협정이다. 한국에 관한 조항은 제 2조 (a)항에 기술돼 있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며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자격 청구권을 포기한다.' 이어 세곳의 섬이 한국 영토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 세곳이 어디를 말하는지 알 길이 없다. '퀠팥'(Quelpart),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 그리고 '다줄렛'(Dagelet)? 도대체 한국의 어느 섬을 말하는 것일까.

'퀠팥'은 제주도의 서구식 표기다. 오래 전 제주도에 온 유럽인들은 섬 이름이 뭔지 몰랐다. 손짓 발짓하며 묻자 마을 주민들이 '귤밭'을 가리켰다. 주민들은 저 밭이 뭐냐고 묻는 줄 알고 '귤밭'이라고 대답해 줬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귤을 '퀠'로, 밭을 '팥'으로 잘못 알아 듣고는 제주도를 '퀠팥'으로 부르게 됐다.

거문도를 말하는 '포트 해밀턴'은 19세기 중엽 인근을 항해하던 영국 상선의 이름이고 울릉도를 가리키는 '다줄렛'은 프랑스 화물선이 지어준 것이다. 이처럼 황당한 이름이 국제 조약문에 버젓이 기재되다니….

우리를 앝잡아 본 것 같아 분통이 터질만도 하지만 한편 생각하면 남의 탓 하기에 앞서 힘을 기르지 못한 우리 탓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독도 곧 '리앙쿠르'의 영유권 분쟁이 일어난 것도 따지고 보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때문이다. 처음엔 미국이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는 포고령에서 '독도와 울릉도는 한국 영토'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그러던 게 일본의 집요한 로비로 조약 초안에 '독도는 다케시마'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에 한국이 강력히 반발하자 미국은 독도조항을 아예 빼버렸다. 영토 분쟁에 휘말릴 것을 꺼려한 나머지 취한 조치였다.

이게 일본 측에 빌미를 제공했다. 일본이 반환해야 할 한국영토에 직접 명기돼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도를 자국 땅이라고 우겨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조약에 명시된 3개 섬을 제외한 나머지 수천개의 섬들도 모두 일본 땅이 된다는 논리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미국이 이후 독도에 침묵을 지키게 된 건 '밴 플리트 보고서'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제임스 밴 플리트는 한국전쟁 막바지에 8군사령관을 지냈던 인물이다.

퇴역 후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창설한 정도로 친한파였던 그는 비밀문건을 만들어 아이젠하워에게 건넸다. '독도는 원래 일본 땅'이라는 게 아닌가. 밴 플리트가 겉으론 '친한' 속으론 '친일'을 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미국은 독도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해묵은 논쟁'이라며 마치 독도를 한·일 두나라 사이의 '정치적 이벤트'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논평을 내놓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미국과 일본간의 합의에 49개국이 서명했으나 한국은 일본 측의 끈질긴 반대로 초청받지 못했다. 그러니 독도문제는 미국이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독도엔 민족적 감정 뿐만 아니라 외세에 의해 반토막 난 분단의 설움이 응축돼 있는 곳이다. 다시 한번 미국의 '양심'을 믿어보자.